산불에 8일 못 씻은 할머니들, '목욕탕' 모셔갔더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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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에 8일 못 씻은 할머니들, '목욕탕' 모셔갔더니…[남기자의 체헐리즘] : 네이트 뉴스
한눈에 보는 오늘 : 사회 - 뉴스 : 1300가구 불에 타버린, 경북 영덕에서 남기는 자세한 장면들 여전히 차가운 대피소 바닥에, "우리 집도 차마 못 보겠어" 트라우마로 남아 8일 만에 목욕탕 다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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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가구 불에 타버린, 경북 영덕에서 남기는 자세한 장면들
여전히 차가운 대피소 바닥에, "우리 집도 차마 못 보겠어" 트라우마로 남아
8일 만에 목욕탕 다녀온 할머니 "하늘을 날 것 같아", 필요한 건 섬세한 지원, 결국 사람

"하이고, 통닭 먹는 건 오랜만이네. 이거는 어디 통닭인교."
여든 넘은 할머니가 주름진 손을 뻗으며 한 말이었다. 치킨 아닌 통닭. 그 단어가 오랜만이라 어쩐지 반가운 기분이었다.
여기 앉아, 같이 잡솨요. 아이고 어르신 많이 드세요, 괜찮은데요. 잡솨요, 우린 다 못 먹어, 남기면 아깝지, 벌 받지.
대피소인 마을회관서 맨날 도시락만 드시니, 맛난 것 좀 드시라고. 사다 드린 꼬마 김밥과 간장 통닭인데 자꾸 같이 먹자고 했다. 못 이기고 할머니들 사이에 앉았다. 꼬마 김밥 하나가 내 앞에 놓였다. 거기에 한 줄이 더 놓였다. 배고프지, 많이 먹으라고.

집이 다 타버려 가장 힘들 이가, 비좁아진 마음마저 내어 내게 먹으라 권했다. 애써 들고 욱여넣었다. 뭐라도 묻고 기록하려 왔으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뭘 물을 수 있을까. 심경이 어떠신가요,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어떻게 지내시나요. 다 적절치 않은 것만 같아서.
고심이 무색하게, 별수 없이 산불 얘기가 나왔다. 오른편에 앉은 할머니가 말했다.
"25일 저녁에 불이 나서 나왔다가, 오늘 처음으로 집에 들어가 봤어요. 우리 아들이 가면 엄마 마음만 다친다고 못 가게 했는데…. 뭐 피해 조사한다고 해서 가봤어요. 전부 다, 다 타버렸어요, 너무 기가 막혀서."

할머니는 꼬마 김밥을 먹다 말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걸 왜 봤어, 난 아직 가보지도 못했어, 무서워서. 그리 위로하던 할머니도 있었다.
툭, 살짝 건들기만 해도 그리 눈물이 뚝뚝 떨어지던 날이었다.
"불 꺼지면 끝난 줄 알아"…영덕서 1300가구 불탔다

경북 영덕에 와 있었다. 산에 빙 둘러싸여 있다시피 한 동네였다.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유례없이 빠르게 번졌다. 자그마치 1300가구가 다 타버렸다.
피해 지역이 어딘지 애써 찾을 필요도 없었다. 산은 어딜 봐도 온통 까맸고, 차 타고 오는 내내 불에 파괴된 건물이며 집이 수두룩했다. 봄바람을 타고 그을음 같은 내음이 코끝을 자극하기도 했다. 영덕 오십천을 따라 만개한 벚꽃마저 슬펐다. 천진난만하게도 눈이 부시도록 화사해서였다.

산불은 가까스로 꺼졌다. 산불이 꺼지며 국민 관심도 다 타버린 듯했다.
영덕 국민체육센터에 가득한 대피 텐트를 보며, 비좁고 찬 바닥에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이들을 보며, 지팡이를 짚고 그사이를 힘겹게 거니는 어르신들을 보며, 초점 잃은 눈을 마주하며 알아챘다.
산불만 꺼졌고,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단 걸.

새벽 4시에 달려온 '50일 갓 넘은 아기 아빠'. 아기 보며 재난 현장 챙기느라 24시간씩 집과 영덕을 왔다 갔다 하는 이동환 에이팟코리아 상임이사가 내게 말했다.
"초반엔 기자들도 많이 오고 기사도 나갔는데 뚝 끊겼잖아요. 물리적으로도 멀고요. 불도 꺼졌고 꺼지면 이제 된 줄 아니까요. 근데 아직 시작도 안 한 거예요. 영덕 피해 가구가 1323동이거든요. 진짜 말이 안 돼요. 왜냐하면 울진 산불 때 300가구, 고성이 200가구 그랬었어요. 이건 그냥 미사일이 쓸고 간 거나 다름없어요."
5살 아이 엄마가 울었다 "당장 생계부터 막막, 어찌할지"

이를 하나씩 세밀하게 바라보니 말문이 막힐 정도로 먹먹했다.
아버지가 30년간 농사지은 2만 평 크기 과수원이었다. 영덕군 지품면 황장리에서 농사짓던 신한용씨 얘기다.
7년 전 부친이 갑작스레 돌아가셨을 때, 한용씨는 마음먹었다. 아버지가 홀로 해왔던 배, 사과 농사를 잇겠다고. 엄두가 안 났지만 차마 놓을 순 없다고. 첫해에 농사지으며 생각했다. 아버지는 이 많은 걸 어떻게 혼자 다 했느냐고. 사계절을 쉬지 않고 일했다. 한여름에 무리하다 쓰러지기까지 했다. 맛이 좋다고 다들 알아주기 시작했다.

그 모든 땀과 노력의 열매가 순식간에 불타 사라졌다.
먹고 살던 수단이 불에 다 타버렸단 것. 이는 당장 생계가 끊겼다는 것. 한용씨 아내는 이리 말하며 울먹였다.
"돈이 제일 시급해요. 아이가 5살이거든요. 아직 손이 많이 가기도 하고 자주 아파서, 제가 일을 나가기도 어려워요. 100만원을 벌기도 쉽지 않아요. 생계가 제일 문제죠. 가지고 있는 금을 팔아야 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꼬마김밥, 어르신들 한 줄 다 못 드실 것 같아서

하루하루 고된 이들이 쓰러지지 않게 지탱하던 이들. 대피소에서 본 광경은 놀라웠다. 세탁 버스에선 쉴 새 없이 옷들이 돌아갔고, 점심엔 밥 차에서 구수한 내음이 퍼졌으며, 심리지원 센터에서 이재민들 마음마저 챙겼다. 동분서주하던 활동가들, 자원봉사자들, 공무원들. 한겨울인 현실에서도 어떻게든 봄을 끌어오려던, 진정 인간다운 이들.
그걸로는 다 채워지기 힘든 무언가가, 세밀하게 봐야 보였다. 이동환 에이팟코리아 이사도 그런 걸 고민하는 이였다. 마을 두 곳, 130명을 지원한다고 했다. 동환씨가 이리 말했다.
"오늘 점심은 치킨하고 김밥을 드리려고요. 맨날 도시락만 드셨을 것 같아서요."

마을까지 가까이 가서, 어르신들과 얘기하며 호흡하고, 서로 믿음을 쌓으며 발견한 무언가. 정오가 되기 전, 그가 오라고 해 도착한 곳은 꼬마김밥 가게였다. 왜 꼬마김밥이냐고 물었다. 동환씨가 답했다.
"현장에선 우연성이 좀 많거든요. 원래는 김밥천국 같은 분식집에서 하려고 했어요. 어르신들이 한 줄 다 못 드실 텐데, 햄 같은 거 안 좋아하실 텐데. 그러면서 동네 돌다가 꼬마김밥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작기도 하고 나눠주기도 좋고요."
"브라자 달린 난닝구 있잖아" 섬세히 봐야 보이는 거였다

삼화2리 마을에 들어서자 타는 냄새가 아직도 진동했다. 마을 여기저기서 여전히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메케하고 독한데도 어르신들은 마스크도 안 쓰고 있었다.
동네는 살펴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할머니 말마따나 "시집와서 30년 산 집인데" 다 타버렸다. 폭삭 내려앉고 엿가락처럼 휘고 까맣게 그을렸다. 깨진 창문 안으로 '팔순 잔치 축하' 가족사진이 보였다. 다들 마을회관에 모여 있었다. 대피한 첫날은 전기도 안 들어왔다고 했다.
고단한 이들이, 살펴주러 온 이들을 온몸으로 환대했다. 기뻐하는 게 보였다.
"재난 구조 단체에서 치킨이랑 뭐랑 해가 오셨네. 아이고, 진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물우물 입에 넣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랜만이라 맛있다고 먹었다. 가까이 붙어 앉으니 더 많은 게 보였다. 껍질을 뜯어내거나, 씹기 힘들어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대피하라고 해서 몸만 나왔단다. 잠깐이면 될 줄 알았는데 다 타버렸다. 길어지니 갈아입을 게 필요하다고 했다. 할머니들은 대체 뭘 입을지 궁금했다.
"난닝구, 브라자까지 달린 거 있잖아. 할머니들 입는 거. 100 사이즈가 제일 많고, 95하고 여기는 105 입어야 하고. 바지는 고무줄이 최고지 뭐."

섬세히 바라봐야만, 가까이서 물어야만 비로소 아는 거였다. 동환씨는 그래서 현장서 바로 쓸 '현금'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말 필요한 게 뭔지 들은 뒤에 사서 전하는 게 가장 좋다고.
"하늘을 날 것 같아"…목욕 끝낸 할머니가 한 말

동환씨가 '목욕 쿠폰'을 만들었다고 했다. 가까이 있는 동네 사우나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목욕할 수 있도록 한 거란다. 지난달 25일 이후 목욕을 편히 못 하기도 했지만, 이런 이유도 있었다.
"피해 조사한다고 해서 집에 들어갔다 왔더니 온몸이 새카매졌어."
목욕 갈 어르신들이 저마다 손을 들었다. 차에 모시고 가기로 했다. 내 차에도 할머니 세 분이 탔다. 좁다란 시골길을 천천히 달렸다.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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