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전 만났던 사람을 애타게 찾는 신문 광고 +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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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계엄령 당시 쫓기던 상황에 대한 내용이고 아래 기사들 전문 읽는걸 강력 추천합니다.

https://v.daum.net/v/20210520090211610

광고주와 광고주가 찾는 사람은 바로 이 회의에 참석한 대학생 대표들 가운데 하나로 추정됩니다.
■ 학생운동 무력화 위한 무더기 연행 당시 함께 탈출
광고를 보면 두 사람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함께 겪었습니다.
"17시 30분경 우리 둘은 회의장으로 난입한 공수부대의 체포를 피해 23:50경까지 동 대학 교정 내 어느 건물(현재 수영장이 설치된) 지하보일러실 귀퉁이의 좁고 추운 공간에 갇혀 지독한 공포에 시달리다 5월 18일 0시 직전에 천운으로 탈출한 경험을 공유한 사이입니다"
두 사람은 어떤 연유로 이런 상황을 함께 맞닥뜨리게 됐을까요?
회의가 이어지던 5월 17일 오후 5시 30분 전후, 이화여대에는 군인들이 들이닥치며 대학생 대표들을 검거에 나섭니다. 토끼몰이식 체포 작전에 대학생 대표들 대다수는 연행되고 일부만 군인들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에 대한 체포가 마무리되던 바로 그 날 밤 24시, 즉 18일 0시를 기해 전국에 비상계엄 확대가 선포됩니다. 그리고 광주에서는 18일부터 유혈 사태가 벌어지며 5.18민주화운동이 시작됩니다.

https://news.kbs.co.kr/mobile/news/view.do?ncd=5221738#float


보일러실로 숨어든 뒤 10여 분 정도 지난 시각, 우리는 남녀 학생들이 같은 건물 안으로 쫓겨 들어오며 지르는 비명을 들었습니다. 곧이어 군홧발 소리와 박달나무 곤봉이 학생들과 벽과 교탁에 내리꽂히며 내는 괴성, 통곡과 신음에 계엄군들이 씩씩거리며 내지르는 엄청난 욕지거리들…. 5월의 여왕 장미가 만발하고 초록이 싱그러웠던 그곳이 한순간에 생지옥으로 변했습니다.
(중략)
기고문은 이렇게 끝납니다. 광고주에게 남은 숙제가 뭔지 물어봤습니다. 그는 목숨이 오가는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 준 경비직원분을 찾아 소주 한 잔 올리려 했는데 이미 돌아가셔서 보답할 길이 없다고 했습니다. 유해는 이미 화장해 뿌렸는데 국가유공자인 이 분의 위패를 국립묘지에 모실 수 있다고 하니 나중에 경비직원분의 부인이 세상을 떠나시면 두 분을 대전현충원에 함께 모실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