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기소된 소년은 12인의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동의하면 사형에 처해짐. 증거가 확실해 다들 빨리 끝내고 가려고 하는 와중에 8번 배심원 혼자 소년의 죄를 다시 한 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
 
 
 
 
 
 

- 여러분, 나도 특별한 건 없소. 여러분과 마찬가집니다. 증언을 보면, 유죄 같아요. 정말 유죄일지도 모르죠! 저는 6일 동안 법정에 앉아서 상황을 지켜봤습니다. 모두들 소년이 유죄라고 확신하시는데, 난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 다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거죠? 나도 질문이 있습니다. 별것 아닐 수도 있겠지만, 피고인 소년의 변호인은 반대심문도 제대로 하지 않았어요. 
 
 
 
 
 

- 사소한 걸 그냥 지나쳤죠. 
- 사소한 게 뭐 있소? 질문을 안 하는 건, 어차피 다 뻔하기 때문인 것 아니오!
- 변호사가 자격 미달일 수도 있죠. 만에 하나 그럴 수도 있잖아요.
 
 
 
 
 
 
 

- 우리 처남이 딱 그런 변호사요.
- 하하....저는요. 제가 그 소년이라고 한번 생각해 봤어요.
 
 
 
 
 
 
 

- 다른 변호사를 요구했겠죠. 내 목숨이 걸린 재판인데. 변호사가 증인을 그렇게 다루다뇨. 게다가 목격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단 한 명이고, 그걸 들은 이는 소년이 뛰쳐나가는 걸 봤다고 했고요.
 
 
 
 
 
 

- 결국 다 정황증거 뿐이죠. 증인은 두 사람 뿐인데, 그들이 틀렸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 무슨 소리예요? 그럼 증인을 세우는 게 애초에 무슨 의미가 있어요?
- 증인이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이오!
- 증인들은 맹세를 하고 증언대에 섰잖아요!
- 사람들은 실수를 하잖아요. 증인들이 실수를 할 가능성도 있잖아요.
- 아닐걸요.
- 확실해요?
 
 
 
 
 

- 이봐요. 사람들이 실수를 하는지 여부는 확신을 못 하죠. 과학처럼 정확한 것도 아니잖소.
- 내 말이 그 말이오.
 
 
 
 
 
 
 

- .........
- 잠깐. 그럼 요점으로 돌아가 봅시다. 소년의 아버지의 가슴팍에 꽂힌 칼은 뭐요? 
 
 
 
 
 
 
 

- 그 소년이 그날 밤 샀다는 칼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자고요.
- 그럽시다. 일단 한 번 보죠. 배심원장님, 부탁드립니다.
- 그 칼 지겹도록 봤는데...뭐하러 또 봐요?
- 증거물을 볼 수 있는 건 배심원의 권리요.
 
 
 
 
 
 

- 수고하십니다. 증거물 중에 칼 좀 갖다주시겠어요?
- 그러죠.
- 고맙습니다.
 
 
 
 
 
 

- 이 사건에서 칼은 대단히 중요한 증거품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 동의합니다.
- 좋아요. 한 번에 한 가지씩 짚어 봅시다. 하나, 소년은 아버지에게 몇 대 얻어맞고 8시에 집을 나왔다. 
 
 
 
 
 
 

- 그냥 맞은 게 아니고 주먹으로 맞은 겁니다. 엄연히 달라요.
- ...... 소년은 아버지에게 주먹으로 몇 대 맞았어요.
 
 
 
 
 
 
 

- 둘째, 이웃에 있는 고물상에 가서 재....뭐더라..
- 잭나이프요.
- 잭나이프를 샀죠. 보통 칼이 아니고, 손잡이에 굉장히 특이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소. 가게 주인 말로는 딱 하나밖에 없다고 했죠. 
 
 
 
 
 

- 셋째, 소년은 8시 45분에 친구들을 만났다고 했죠. 여태까지 맞나요?
- 그래요. 
-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9시 45분에 장소를 떠났다고 했고, 친구들도 그 칼을 봤죠. 
 
 
 
 
 
 

- 넷째, 친구들이 법정에서 같은 칼임을 증언했고, 다섯째, 소년은 10시에 집에 옵니다. 여기까진 똑같은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죠. 소년은 11시 30분에 영화를 보러 갔고 3시 10분에 집에 오니 아버지는 죽어 있고, 자기는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죠.
 
 
 
 
 
 
 

-  칼은 어떻게 됐을까요? 잃어버렸고, 다시는 못 봤다는 황당무계한 말을 하고 있어요. 제 생각엔 그 놈, 영화관 근처에도 안 갔어요. 아무도 소년이 외출하는 거, 영화관에 있는 걸 못 봤다고요! 자기가 그 날 본 영화 제목도 기억 못하는 놈 말을 믿으라고요?
 
 
 
 
 
 
 
 
 
 
 
 

- 소년은 아버지에게 얻어맞고 아버지를 칼로 찌른 겁니다. 12시 1분에 집을 나갔죠. 칼에 있는 지문을 지우는 치밀함까지 보였다고요. 이런 칼이 주머니에서 빠졌다고 보세요? 말도 안 돼요!
 
 
 
 
 
 

- 아니면, 누가 주워서 소년의 집으로 간 다음 이 칼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보려고 소년의 아버지를 찌른 건가요?
- 소년이 정말 칼을 잃어버린 것이고 다른 사람이 비슷한 칼로 그의 아버지를 찔렀을 수도 있죠!
 
 
 
 
 
 
 

- 이 칼을 좀 보시오. 이런 칼이 흔해요? 전 이런 칼, 처음 봅니다! 가게 주인 말도 그렇고요! 소년이 잃어버린 칼로 누군가 소년의 아버지를 찔렀다고요? 우연이라기엔 좀 무리가 있잖아요!
-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말입니다!
- 절대로 그럴 리 없어요!
 
 
 
 
 
 
 
 
 
 
 
 

- 아니, 똑같은 칼이잖아!
- 어디서 난 거요?
- 똑같은 칼이네.
- 무슨 짓이오?
- 어디서 났어요?
- 어젯밤 소년의 집 근처를 산책하다가, 동네 전당포에서 6달러 주고 샀소.
 
 
 
 
 

- 그런 칼을 사는 건 불법이오.
- 그래요. 나도 범법자요.
- 도가 지나쳤소!
 
 
 
 
 

- 그래요. 뭐 똑같은 칼 구하느라 고생하셨소. 그런데, 같은 칼이 열 개 있다고 칩시다. 그래서 달라지는 게 뭡니까?
- 그럴지도 모르죠.
- 무슨 소리요? 같은 칼을 찾았다는 게 무슨 대단한 발견이오?
 
 
 
 
 
 
 

- 다른 사람이 비슷한 칼로 소년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믿으라는 말이예요?
- 확률은 백만 분의 일도 안 될 겁니다!
- 적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잖아요!
- 그러나 매우 희박한 일이죠!
 
 
 
 
 

- 후우...
- (배심원장) 자, 여러분... 다들 앉아요. 서서 이럴 거 없어요.
 
 
 
 
 

- 그런데, 같은 칼을 찾은 건 꽤나 흥미롭네요.
- 뭐가 흥미롭단 거요?
- 글쎄요. 전 흥미로운데요.
- 12명 중에 11명은 아직도 소년이 유죄라고 판단하고 있소.
 
 
 
 
 

- 왜 이러는 겁니까? 우리는 마음 안 바꿔요. 
- 결정을 못 내려서 또 재판을 받아도 결국 소년은 유죄판결을 받을 겁니다.
 
 
 
 
 
 
 

- 어쩌실 거예요? 밤새 여기 있으려고요?
- 사람의 목숨이 달렸는데 그깟 게 대수요.
- 그럼 아예 여기서 살지 그러세요.
 
 
 
 
 
 
 
 
 
 

- 경찰한테 카드나 달래서 포커나 칩시다.
- 저런 농담 못하게 하세요, 배심원장님.
- 제가 그럴 권한이 없어요. 
- 칼이니 뭐니 다 집어치우시오! 목격자가 있는데 무슨...
 
 
 
 
 

- 뭐가 더 필요해요? 이건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사건이란 말이오! 나는 운영하는 정비소가 세 곳이나 된단 말입니다! 어서 끝내고 나갑시다.
 
 
 
 
 
 
 
 

- 잠깐만요. 이 사건에서 칼은 가장 중요한 증거물이예요. 
- 검사도 보조 검사던데, 그 애송이 검사가 뭘 알겠소?
- 이봐요들. 싸워봐야 시간만 가요.
 
 
 
 
 

- .........재투표합시다. 이번엔 비밀, 무기명 투표로요. 저는 투표하지 않겠습니다. 열 한명의 여러분 모두가 유죄라고 인정하면 저도 인정하겠습니다. 유죄 판결을 내리겠단 말입니다.
 
 
 
 
 
 

- 그런데, 소년이 무죄라는 표가 하나라도 나온다면, 논의를 계속합시다. 그렇게 하겠다면 난 준비됐소.
 
 
 
 
 
 
 

- 공평한 것 같네요. 다들 동의하시나요?
- 네. 
- 네.
- 여기, 투표지 좀 넘겨 주세요.
 
 
 
 
 
 

- ......
 
 
 
 
 
 
 

- 유죄. 유죄. 유죄. 유죄. 유죄. 유죄............
 
 
 
 
 
 
 

- 무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