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연설] 이재명 상대원 시장 연설 전문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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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연설] 이재명 상대원 시장 연설 전문 ㅠㅜ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25/05/10/7/4/7/747c2b5f12cb59c252e0b1a5a477e054.png)
- [명연설] 이재명 상대원 시장 연설 전문 ㅠㅜ
이낙연 주의 / 재명은 15분 30초쯤?
여기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여기가 바로 이재명과 그의 가족들이 생계를 유지했던 곳입니다.
1976년 2월 23일 눈비 내리는 새벽에 저기 구종점 단대 오거리에 내려가지고,
짐 싸들고 여기를 걸어 올라와서 우리가 새해 들어 살 집을 갔는데...
우리 성남시민 여러분 기억하시는 것처럼 길이 진창이라서
신발이 자꾸 벗겨지고 걸어 다닐 수가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시장에서 청소 노동자로 일하셨고,
제 어머니는 이 건물을 다시 짓기 전 2층 건물에,
여기 상대원 시장 상인 여러분 기억하시는 것처럼
공중 화장실에 소변 보면 10원, 다른 변을 보면 20원 이렇게 받았는데,
제 어머니 제 여동생이 함께 그 화장실을 지켰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고 저는 초등학교 마치고 저 상대원 꼭대기에 우리가 살았는데
어머니께서 이 화장실에 출근하시기 전에 제 손을 잡고 공장에 바래다 주셨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그래도 밤늦게 야간 작업 끝나고 오면,
낮에 그 오랜 시간 일하시고 나서도 아들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주셨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직도 그때 함께 일하던 사람들 여전히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고,
위험 속에서 목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때 여기 명가 통닭은 과일 가게였는데,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겹게 살아갑니까.
국가가 할 일이 뭐겠습니까?
힘겹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일자리를,
장사가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장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바로 정치 아닙니까 여러분!
제가 우리 아버지 시장에서 청소하시고,
시장에서 버린 종이 깡통 이런 거 주워다가
하대원 고물상에 갖다 파시고,
썩기 직전 또는 썩어서 버린 과일 주워다가 우리 식구들 먹여 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함께 잘 사는 세상, 좌절해서 이 세상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 없는 세상,
열심히 일하면 내게도 기회가 주어지고 나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그런 세상,
여러분 만들고 싶지 않습니까!
제가 요즘 젊은이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공장에서 다쳐 팔이 이렇게 장애가 돼서, 앞날이 너무 캄캄해서,
저도 다른 선택을 생각해 보고 실행해 본 일이 있던 것이 바로 이 뒤 1층, 반지하층이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세상을 포기하고 떠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여러분께 희망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정치가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고 국민을 속여서 권력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국민들이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국민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충실한 일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본 정치는 전혀 그렇지 못했어요.
제가 본 정치는 국민을 속여서 편을 가르고,
잘하려는 사람들을 공격해서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언론 권력 돈 권력 공권력 이용해서
애먼 사람들 가해자로 만드는 그런 악 중에서도 악이었습니다.
이런 정치를 여러분 계속 지켜보실 겁니까?
이런 나쁜 정치 속에 여러분의 운명을 맡겨 놓으실 겁니까?
국민 여러분. 저는 정치를 왜 하는가를 가끔씩 생각합니다.
제가 정치를 하는 이유는,
지금도 여전히 제가 탈출해버렸던 그 웅덩이 속에서
좌절하고 고통받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화장실을 지키면서 아들이 잘 되기만 바랐던 우리 어머니한테 거짓말하고,
"판검사 실력이 안 돼서 변호사해야 하니까 어머니 이해하세요"
이렇게 말하고 그래서 스물다섯 나이에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열심히 일했고,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지만
상처가 너무 많습니다.
![[명연설] 이재명 상대원 시장 연설 전문 ㅠㅜ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25/05/09/f/a/0/fa0296d56be3410d6706a9bf3751bd85.png)
저희 가족이 어머니, 아버지, 시집 간 누나 빼고 여덟 사람.
여덟 가족이 반지하방 한 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우리 능력만큼 노력하고 가지려고 했습니다.
제가 시민운동을 할 때도 그랬습니다.
권력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쓰는
이 부패한 정치와 행정을 감시하기 위해서 시민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시장이 됐습니다.
성남시민들 병원이 없어서, 응급의료센터 없어서
분당으로 멀리 가다가 사고 나는 게 무서워서 병원 만들기 운동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잡혀서 처벌받았습니다.
분당에 정자동의 부정부패,
딱 대장동 같은 그런 나쁜 부패행위 하는 거 막다가 제가 감옥 갔습니다.
제가 시장이 된 이유도 단순했습니다.
"이 부패한 정치 그만두고 우리 국민들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들을 하자"
그래서 시장이 됐습니다.
시장이 됐더니 문제가 됐습니다.
저를 미워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
저를 미워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시민들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고, 부정부패 못하게 막았고,
공정하게 권한 행사하도록 공무원들 지휘 잘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가만 놔두지를 않더군요.
그러다가 결국, 우리 성남 사람들은 다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 가족들을 동원해서 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제 여러 형제 중에 한 형제를,
그들이 "성남시의회 비례대표 공천 주겠다.
이재명 쫓아내면 시의회 의장 시켜주겠다"고
작업하고 유혹해서 그 형님이 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형님의 목적도 있었겠지요. 저는 압니다.
권력이라고 하는 거는 그 옆에 가까이 있기만 한다는 것도 권력이 됩니다.
시장에게 전화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도 권력이 돼서,
가끔씩 저한테 전화 오면 제가 일부러 안 받습니다.
주변 사람 모아놓고 저한테 전화한 게 뻔하거든요.
시장한테 직통으로 전화된다는 것만 해도 권력이고,
그것만 해도 엄청나게 나쁜 짓 해서 이익볼 수 있는 게 바로 권력입니다.
그런데 제 형님께서 시정에 개입을 하셔서,
공무원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이거 해줘라 저거 해줘라"
이렇게 할 때 제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형님 해드세요. 뜻대로 하십시오" 해도 되겠지요.
결말이 두려웠습니다.
그 결말은 결국 친인척 비리 그리고 망신, 그리고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겠죠.
그래서 제가 완전히 다 막았습니다.
공무원들이 전화도 못 받게 상대도 하지 말라고 했더니
어머니를 통해서 저와 통화하겠다고 어머니 집을 찾아왔습니다.
어머니가 전화 연결을 안 해줬습니다.
왜 그런지 아니까.
그 어머니를 집에 불을 질러 죽인다고
교회에 불을 지른다고 협박을 하니 어머니가 저한테 전화하셨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들어가지 못하셨어요.
분당에 있는 딸 집으로, 저희 집으로 옮겨 다니셨습니다.
집에는 못 들어가셔서 제 아내가 찾아갔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 좀 하자. 약 먹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거기서 "어머니의 어디를 어떻게 한다"
이런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참혹한 얘기를 했습니다.
저에게 어머니는 하늘입니다.
저를 낳아주셨고, 저를 길러주셨고, 저를 언제나 믿어줬고
저의 어떤 결정이라도 다 지지해주신 분이십니다.
그 어머니의 어디를 어떻게 하다니!
제가 화가 나서 전화했습니다.
왜 그런 말을 했냐? 어떻게 자식이 부모한테 그럴 수 있냐?
왜 불 지른다고 협박하고 그러냐?
그런데 "이런 철학적인 표현도 이해 못한다"고 저를 조롱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욕했습니다.
제가 욕한 건 잘못했습니다.
공직자로서 욕하지 말고 끝까지 참았어야죠.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결국은 어머니를 폭행해서 병원까지 가셨습니다.
제가 인격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도 이제 떠나셨습니다. 형님도 이제 떠나셨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제 이런 문제로 우리 가족들 아픈 상처 그만 좀 헤집으십시오.
제가 이 말씀은 드릴 수 있습니다.
가족이 공적인 복무에 관여를 하면,
그게 친인척 비리고 친인척의 시정개입이고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래서 그걸 막느라고 벌어진 일입니다.
형님이 저한테 그랬습니다.
"어머니를 때리기 전에 내가 이거 다 녹음해놨는데
너 나한테 와서 빌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이거 녹음 공개 안하고,
계속 시정에 관여하는 거 전화 안 받고 말 안 들으면 공개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정말 고민했습니다.
그 욕을 하고 녹음당한 다음에 한 2, 3주 지나서 생각을 해보니까
제가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더군요.
그 녹음을 공개를 하면 평생 망신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형님 요구를 들어드릴까도 잠깐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내가 비록 나중에 망신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평생 이 녹음으로 고통받더라도,
공무에 형님이 개입하는 일을 허용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형님이 공표를 했고,
그게 십수년 동안 계속 돌아다니면서 지금도 저를 압박합니다.
국민 여러분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그러지 않겠습니다.
시정과 친인척 비리는 사실 동전의 양면 같아서 정말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남에 계시는 시민 여러분은 아시겠지만
야구르트 배달하던 제 여동생 기억하십니까?
제가 시장에 당선이 됐는데 야쿠르트 배달 그만하고 싶어서,
장사가 안 되고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지만,
혹시 다른 직장 구하면 오빠가 도와줘서 그런다는 소리 들을까 봐
제가 재선한 후까지 야쿠르트 배달 계속 했고,
그러다가 제가 재선된 후에 청소부로 직업 바꿨다가
과로로 새벽에 화장실에서 죽었습니다.
제가 도와준 게 없어서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저희 누님 여전히 요양보호사 하시고 힘들게 사십니다.
저희 큰 형님 건설 현장에서 일하시다가 떨어져가지고 왼쪽 다리 절단하시고,
최근에는 당뇨병까지 와가지고 오른쪽 다리도 절단했습니다.
그 참혹한 장면을 찍어서 언론에다 내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제 조카가 "작은 아빠. 우리 아버지 그 처참한 장면 그 영상 좀 어떻게 지워달라"고
힘 좀 써달라고 나한테 부탁했어요.
언론사가 제가 부탁한다고 들어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일부러 보라고 그랬을 텐데.
다른 형제들 저한테 도움 하나 받은 것 없이
청소부로, 청소회사의 직원으로 성실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단 한 명의 예외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걸 저는 막으려고 하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여러분께서 제가 폭언한 것을 비난하시더라도
제가 최소한 우리 형제들이 시정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공정하게 시정 수행하려고 노력했던 점을 조금만, 조금만 살펴주십시오 여러분
그리고 이곳에 우리 아버지의 어원이 여전히 숨결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우리 가족, 우리 형제들, 나와 함께 같이 공장에서 일했던 그 수많은 사람들,
어려운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일하는 그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보다 몇 배 수십 배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러분!
공정한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삶의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도 열심히 노력하면 나에게도 길이 있다고 생각이 돼야,
최소한 내 다음 세대들은 나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거라고 믿어지는 세상이라야,
아이도 낳고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 거 아닙니까 여러분!
여러분을 믿겠습니다.
이 골목에서 아버지의 그 더러운 리어카를 뒤에서 밀면서
새벽마다 이 통로를 통해서 학교가는 여학생들을 피해서 제가 저 구석으로 숨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저의 이 참혹한 삶이 제가 어떤 공격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입니다.
제가 그 많은 사람들에게,
제가 조금만 고통을 견뎌내면,
조금씩이라도 희망을 주고,
그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이재명이 하는 정치에는 저의 삶이 다 투영돼 있습니다.
![[명연설] 이재명 상대원 시장 연설 전문 ㅠㅜ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25/05/09/9/e/2/9e228bf3f3b79f6d18480ea47c656b2d.png)
제가 이 과일 가게에서 버린 과일들을 냉장고도 없고, 놔두면 썩으니까,
밤에 아버지가 주워서 가져오면
우리 식구들이 밤에 다 모여서 한꺼번에 배가 터지게 먹어치웠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썩어서 못 먹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정치를 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과일을 냉장고에 넣어놓고
필요할 때 싱싱하게 꺼내 먹을 수 있는 정책"을 만들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과일을 주는 사업을 한 이유도
냉장고에 과일 넣어 놓고 먹고 싶을 때 꺼내 먹는,
그게 제 꿈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교복을 입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최소한 교복 한 벌은 해주자"
부모가 돈이 없어서, 교복 살 돈이 없어서
선배들이 입던 교복 울려 입는 그 아픈 심정을
제가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어서 무상 교복 시작했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의 삶, 우리 서민들의 삶과,
이재명의 참혹한 삶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