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의 학병시절 일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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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대한민국 최초의 추기경이자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 당시 큰 영향을 끼쳤던 인물임.

1944년,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은 일본군 학병으로 징집을 당해 치치지마 섬으로 배치되었는데....
김수환 추기경님의 학병시절의 일화를 모아봄
1. 훈련소 시절

학병에 징집당한 김수환 추기경님은 나가노현 마츠모토라는 곳에서 훈련을 받았음

당시 김수환 추기경님은 잘못된 것을 강단있게 말한 성격이라
일본인 병사들한테 구타를 당하거나 심한 차별을 받았음.

그러던 어느 날, 김수환 추기경은 일본인 고참 한명과 대화를 했는데...

'영내 조선인 차별의 부당성' 등을 이야기 했다가 구타를 당했고
영내 2등이었던 훈련 점수가 뒤에서 2등까지 떨어져 사관후보생 응시 기회까지 박탈됐음
2. 수송선 격침 위기

훈련과정을 마친 김수환 추기경은 수송선에 탑승해 치치지마로 향했음

항해가 거의 끝나갈 무렵, 수송선이 미군 잠수함에 발각당해 격침당할 위기에 처해졌음

그러던 중 천만다행으로 수송선 근처에 안개가 껴, 잠수함은 공격을 포기하고 물러갔다고 함.
3. 치치지마 섬 탈출 시도

치치지마에서 가혹한 군생활을 이어가던 김수환 추기경과 동료 학병들은
근처 미군이 점령한 이오지마로 탈출할 계획을 세움

탈출 당일, 김수환 추기경 일행은 카누를 구해 도주를 시도했으나...
거센 파도 때문에 탈출을 포기했고 영내로 복귀했음

실제로 치치지마와 이오지마는 약 320km 떨어져 있었으니
사실상 탈출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는데다

심지어 관물함에 일본군을 비난하는 편지까지 적어놨으니...
탈출을 시도 하는건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다고 함.
4. 미군의 치치지마 점령

그 후 일본이 패망하고 미군이 치치지마에 주둔하게 됨

그러나 일본인 병사들만 본토로 송환하고 조선인 병사들은 아무런 조치도 없어 대기하는 중이었음

이때 김수환 추기경은 미군 병사와 대화를 시도했고
미군 사령관과 접촉을 하게 됨

미군 사령관은 '이 섬에서 미군 조종사 열댓명이 불시착 했다, 그들의 행방을 알고 있나?'는 질문을 함

그제서야 김 추기경은 미군이 조선인을 송환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고
우선적으로 조선인의 신변 보장을 요청했으며
(* 일본인 병사들이 모른다고 발뺌하니까 조선인 병사들을 심문할 계획이었다고 함)

이후 조선인 노무자 3명과 함께 괌에서 열리는 전범재판에 참석해
일본군의 식인 행위를 고발했음.
+)추가 관련된 치치지마섬 이야기
https://m.cafe.daum.net/subdued20club/RaxJ/110680?svc=cafeapp

미군들이 경악했던 일본군의 끔찍한 행위 <치치지마 섬 식인 사건>
m.caf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