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평균 4시간 수면…멈춰 있으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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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좋아하는 개그맨 김병만은 병만랜드 앞마당에 능소화, 하라케케 등 직접 선별한 식물들을 손수 심고 가꾸고 있다. [스카이터틀 제공] |
제주공항에서 차로 약 30분, 17㎞를 이동하면 바다 내음이 넘실대는 제주 제주시 조천항에 다다른다. 항구로 정박한 크고 작은 고깃배들이 그림 같이 자리한 뱃길을 따라 걸으면, 소박한 동화가 눈앞에 그려진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 자리한 나지막한 건물들. ‘체험형 테마공간’인 병만랜드다. 바람 많은 제주를 견딜 돌담길을 걸어 능소화와 하라케케를 심은 작은 마당으로 들어서니 사슴 모자를 쓴 낯익은 얼굴이 사람들을 반긴다.
“어이, 김반장!” 요즘 개그맨 김병만을 부르는 이름이 달라졌다. ‘족장’ 김병만은 제주에서 ‘김반장’으로 통한다. 동네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조천항에 자리한 조천선주회 건물에는 그가 직접 그린 하르방·하르망 그라피티가 자리했다. 뚝딱뚝딱 수리가 필요한 곳이면 기다렸다는 듯 김반장이 등장한다. 지난달 어버이날에는 제주시 조천읍 어르신들을 찾아 마음을 나눴다.
“해 질 무렵이면 어르신들이 병만랜드 앞 정자에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세요. 허심탄회하게 오가는 소탈한 삶의 이야기, 정제되지 않은 순간들의 말, 가면을 쓰지 않은 이야기를 들으며 마감하는 하루가 제겐 너무 좋더라고요. 이게 진짜 삶이구나 싶어요.”
최근 제주에서 만난 김병만은 요즘의 일상을 이렇게 말한다. 그에게 제주는 새로운 안식처이자 또 다른 도전이었다. 이곳에서 김병만은 삶의 새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 있다.
제주로 내려온 ‘오지 중독자’
그가 제주에 내려온 건 지난 2월이었다. 10여 년간 지구상의 모든 정글을 다닌 그는 ‘새로운 정글’을 찾기 위해 제주의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푸른 바다를 마주한 곳에 세워진 병만랜드에는 그가 정글에서 배운 삶의 지혜와 방식이 고스란히 투영됐다.
김병만은 “오랫동안 정글에 다니며 어찌 보면 ‘오지 중독자’가 됐다”며 “지금도 로빈슨 크루소를 꿈꾸고 있다. 도구가 허락하는 수준에서 친환경 삶을 살며 함께 체험하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곳은 김병만이 뉴질랜드에 45만평 규모로 자연 속에 만든 첫 병만랜드의 한국판이다. 그는 “지중해 기후의 뉴질랜드와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찾고자 했다”며 “제주는 뉴질랜드와 온도는 비슷하지만 아열대 기후로 정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식생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기후 변화로 아열대 환경에 접어든 제주는 요즘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바닷속에선 형형색색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키위, 바나나 등 아열대 작물이 쑥쑥 자라난다. 김병만은 이곳을 “제주의 정글로 향하는 출발점이자 베이스캠프”라고 했다.
1800평 규모의 병만랜드 입구로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3개 동(棟)의 건축물은 모두 김병만이 설계해 만들었다. 공간은 요리체험을 할 수 있는 카페, 직접 흙을 만지고 공구도 다뤄보며 ‘생존 체험’을 할 수 있는 공방, 두 가구가 머물 수 있는 프라이빗한 숙박시설로 구성됐다. 지난 14일 ‘병만랜드’의 첫 타자인 카페가 문을 열었다.
‘체험형 공간’의 주요 방문객은 아이와 함께 오는 가족들이다. 공방을 만든 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삶의 경험을 주고 싶어서다. 이곳은 아이들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공간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안 돼, 하지마’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대신 안전한 환경에서 가르치며 새로운 경험을 주고 싶었어요.”
천혜의 환경이 살아있는 제주는 제약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건축물의 색상, 안내표지판, 배관 시설 등 지역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철저히 지켜 오랜 시간 공들인 곳이 바로 병만랜드다. 그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이제 시작”이라며 “지금도 마당에 심을 식물을 찾고 있고, 구석구석 매만질 곳이 많다”며 웃었다. 여름이 오면 능소화가 피어나 병만랜드의 외벽을 감싸게 된다. 주황색 능소화와 푸른 잎이 네모난 건물을 뒤덮어 제주 바다와 어우러지는 풍광을 상상하며 그가 직접 심었다.
김병만에게 제주는 새로운 삶의 공간이다. 오는 9월 결혼을 앞둔 그는 이곳에 보금자리를 꾸린다. 그는 “나의 밑바닥을 모두 알고,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예비 신부”라며 수줍게 귀띔했다. 가을에 올릴 결혼식은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다. 가족만큼 가까워진 제주 이웃들은 “조천항에서 한치잡이 배의 불을 모두 켜고 한밤중 결혼식을 올리자”고 제안한다. 김병만도 “굉장히 김병만다운 결혼식인데 태풍이 올 수도 있어 걱정”이라며 웃었다.
이곳에서 그는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꾼다. 김병만은 “제주에 터를 잡고 정착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나만의 공간에 숨는 것이 아니라 제주와 어우러지며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병만랜드를 지으며 조천읍의 김반장으로서, 제주의 ‘환경 지킴이’로서 마을 구석구석과 깊은 바닷속을 청소하는 것도 제주와 어우러지기 위해서다.
김병만은 “그 많은 오지를 다니고 사람이 닿지 않는 섬도 가봤지만, 그런 곳에도 쓰레기는 있다”며 “인간이 개입해 망가진 곳은 인간이 치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적은 노력이라도 쌓이면 탄소 중립처럼 쓰레기 중립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코스타리카에 가면 어린이 숲이 있어요. 아이가 태어날 때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 그 나무가 자라 여러 사람을 숨 쉬게 하고 자연스럽게 탄소 중립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조금씩 치우는 것들이 모이고 쌓이면 이미 나빠진 것은 되돌릴 순 없을지라도 조금은 늦출 순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제가 이곳에서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멈추지 않는 ‘도전의 아이콘’
그는 자타공인 ‘도전의 아이콘’이다. 단 한 순간도 멈춰있던 적이 없다. 평균 수면 시간은 하루 4시간. 완전히 녹초가 돼서야 잠이 들고, 두 시간에 한 번씩 깨나 오늘의 ‘할 일’을 찾는다.
“멈춰있으면 불안해지더라고요. 스스로가 게을러지는 것 같고. 늘 머릿속으론 오늘 하루 있었던 일, 나의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메모하고, 자다 깨서 갑자기 자료를 찾기도 하죠. (웃음) 뭔가 일을 할 때에만 머리를 쉴 수 있기에, 전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계속 움직여야 도리어 쉬는 것 같더라고요.”
2001년 영화 ‘선물’로 데뷔한 뒤 2002년 KBS 공채 개그맨 17기로 대중과 만난 그는 KBS2 예능 ‘개그콘서트’의 최장수 인기 코너 ‘달인’을 통해 자신만의 독보적인 코미디 분야를 개척하며 사랑받았다. 지금도 그는 “오래도록 무명의 길을 걷다 ‘달인’으로 사람들이 조금씩 알아봐 주던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 돌아본다. 2011~2020년 방송된 SBS 예능 ‘정글의 법칙’은 그에게 ‘달인’에 이어 ‘족장’이라는 수사를 안기며 제2의 삶을 열어준 프로그램이었다.
“방송인은 어찌 됐든 재능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달인’을 하며 배운 많은 것들이 제겐 성취감이 됐고, 그것이 정글로 이어져 익스트림 스포츠까지 배우며 새로운 길을 열어줬어요. 속도와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결국 해내더라고요”
달인을 거쳐 족장의 삶을 살며 그는 무려 20여 개 자격증을 땄다. 굴삭기 운전 기능사, 스쿠버, 프리다이빙, 스카이다이빙 탠덤 교관자격증 등 그는 언제나 ‘불가능’에 도전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수많은 자격증 중 ‘경비행기’ 사업용 조종사는 가장 힘들게 얻은 훈장이다. MBN 예능 ‘떴다! 캡틴 킴’ 출연을 앞두고 3년간 시험을 준비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그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3년이었다”며 웃었다. 무려 31전 32기의 승부였다. 김병만은 “비행기는 내 기준에선 굉장히 이과적인 시험”이라며 “기상은 물론 수학·지구과학·항공법·지도·무선통신·언어까지 알아야 한다. 총 15개의 과목의 필기 시험을 보기 위해 31번이나 시험을 봤다”고 말했다.
김병만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언제쯤 ‘도전이 끝나냐’고 묻자 그는 “삶이 끝나는 때”라고 했다. “저의 도전은 단지 도전이 아니라, 호기심이자 즐거움이고, 저만의 탤런트를 만들기 위한 자기 계발이에요. 나만의 칼날을 끊임없이 날카롭게 갈아야 무라도 썰 수 있잖아요. 김병만이라는 사람의 상품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가려고 해요. 사람마다 모두 선택하는 길은 다르잖아요. 도전이 바로 저의 길이에요.”
제주=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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